삐딱선 타기2011/10/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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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축구에서는 공을 손을 잡지 않고 농구에서는 공을 튀지 않고 세발 이상 이동하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것은 그 구성원들이 그 룰을 지킬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룰을 지키는 사람이 점차 사라지면 우리는 새로운 게임을 해야 한다.

총 맞고도 안죽으면 게임이 안된다


얼마전 떨어지는 집값과 치솟는 전세값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유독 눈에 띄는 댓글을 하나 발견했다. 젊은 사람들이 세금도 안내고 책임감도 없이 집을 안사니까 집값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전세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곤 자신은 힘들게 평생 돈모아서 집한칸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적어도 젊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과 집을 가진 사람이란 것 정도는 추론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베이비붐 시대를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삼촌 세대들... 상대적으로 많은 또래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지만, 한국경제의 빛나는 발전을 이룩한 그 주역들이다. 그 세대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힘들게 고생해서 우리 가족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던 그 집은 분명 그들에게 가격 그 이상의 가치를 주었던 것은 사실일거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그 좋은 의미도 점차 퇴색하기 시작한다. 집이 투자의 가치로 떠로르기 시작했다. 평당 500짜리 집을 하나 사두면 그게 평당 1000만원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돈이 없어도 걱정할게 없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그만이고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그걸로 갚으면 되니까.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데 왜 미쳤다고 예전에 그렇게 힘들어 돈을 벌었나 싶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공짜가 있다. 노동을 투입하지 않았는데 가치가 생산되었다. 신문이나 매체에서는 이걸 재테크 혹은 부동산 투자라는 말로 멋지게 포장해 준다.

과연 이 물건들이 평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세상에 공짜가 없다. 100원짜리 연필 한 자루가 있는데 그걸 누가 1000원에 샀다. 옆에 친구들이 그걸보고 멍청하다 했으면 거기서 끝날 일이지만 다른 친구가 그걸 1100원에 산다. 물건의 진짜 가치가 아닌 만들어진 가치로서 물건이 거래되기 시작한다. 이걸 우리는 고상하게 투기라고 불러드린다. 투자랑은 한 끗 차이지만 어감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투기는 그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투자로서 그 명맥을 유지한다. 몇 년 전까지의 대한민국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미 회사에서 중역 혹은 고위직으로서 이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반면 
젊은 세대가 이제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한 쌍의 남녀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집을 사려니 3억, 4억... 억억한다. 일년 바짝 벌어도 연봉이 몇 천 만원인데 그 집 한칸 구하려면 부모 도움을 안받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놈의 나라에선 친절하게 돈을 빌려준다고 그걸 빌리면 문제가 해결된단다. 사회 나와서 겨우 대학 등록금 갚으려고 하는데, 이제 집값으로 평생을 빚 갚으며 살라고 한다. 평생을 일만하며 소처럼 살라는 기성세대의 얼마나 고마운 대물림인지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결국 시멘트 덩어리인 그것 하나를 가지기 위해서 말이다.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그걸로 해외여행가고, 좋은 공연 한번 더 보고, 맛있는 외식을 할 수가 있을텐데 말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기존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게 만들고, 드디어 게임의 법칙이 깨지기 시작하게 한다. 집값은 하락하게 될 것이다!

씁쓸한 단면


지금의 매매 수요의 감소, 전세값의 폭등은 결국 이 게임의 법칙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거품이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물건이 제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기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비참한 고통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무작정 정책을 펼친 위정자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마지막 폭탄돌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잘못인가? 어찌 되었건 게임의 법칙은 변하고 있다...

Posted by gizrak
IT & 과학2011/07/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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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드로이드를 보고 있으면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잘 만들어진 플랫폼과 개방성, 그리고 오픈소스와 같은 것들은 리눅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당시 리눅스가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플랫폼의 대명사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마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애플과 경쟁하고자 하는 안드로이드와 쏙 빼닮았다. 리눅스는 무료였고, 개방되어 있었다. 때문에 리눅스는 기회의 땅이었고 미래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리눅스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는지 살펴보자. 물론 나는 지금도 리눅스를 사랑하고 윈도우 보다 훌륭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리눅스에 정말 미쳐 있었다. 결과적으로 리눅스는 윈도우를 (대중적으로) 이기지 못했다. 서버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흔히 말하는 최종 소비자를 리눅스로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왜일까? 난 그것이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힘이라고 본다.

주변에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나 리눅스 사용해."라고 하면 가장 처음 듣는 소리가 그것일 것이다. 아, 이건 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다. 그건 바로 "그걸로 뭐해? 게임은 잘 돌아가? 인터넷은 잘 돼?" 정도이다. 인터넷이야 워낙 우리나라 웹 호환성이 후져서 그런거니 논외로 치고, 나머지 얘기는 결국 그만큼 플랫폼을 받쳐줄 SW의 부족함을 일컫는 것이다. 당장 게임부터 안돌아가지 않는가!

안드로이드가 지금 딱 그 짝이다. 개방성이니 허울은 좋지만 그 개방성 때문에 SW가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고 불법 SW로 넘쳐난다면? 그럼 어느 개발자 혹은 개발회사가 그 플랫폼의 SW을 만들겠느냐. 애플이 폐쇄적이다 욕을 하지만 앱스토어는 개발자인 내가 봐도 SW 수익구조를 깨끗하고 건전하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 뒀다.

또한 폐쇄적이라고 말하지만 그 덕분에 사용자는 동일한 컨트롤에게서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즉, 아이폰 특정 앱에서 리스트를 슥 드래그 하면 삭제라는 버튼이 뜬다고 하면 다른 어떤 어플에서도 동일하게 동작한다는 말이다. 그토록 개방성을 좋아하는 안드로이드 앱은 너도나도 알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해당 앱의 리스트 항목을 지우기 위해서 긁어도 보고, 길게 눌러도 보고, 메뉴 버튼을 눌러도 봐야 한다. 누굴 위한 개방성인가? 개발자를 위한 개방성? SW는 누가 쓰는데?


사람들은 애플의 WWDC 행사를 하면 전세계의 광신도 애플빠들만 거기 모이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저기 온 사람들 대부분은 SW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애플이 그들을 먹여 살려준다. 그러니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지금까지 결과로 봤을 때, 애플만큼 그들을 먹여 살려주지 못한다. 그저 많이 쓰는 플랫폼이니 구색만 맞춰줄 정도의 플랫폼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사들도 지금까지 위피(WIPI)로 SW 업체들 등쳐먹고 피 빨다가, 이제와서 자기네 마켓에 올려라~ SW 개발자 육성한다~ 라고 해본들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냐 이말이다.

왠지 안드로이드가 리눅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미 안드로이드의 개인 SW 개발자들은 수익구조 때문에 다시 iOS로 돌아섰고... 그나마 안드로이드는 또 제조사나 대기업에서 하청을 줘서 SW 만드는 과거의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앞으로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무궁무진하게 쓰일 거라는데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플랫폼이 iOS처럼 SW 개발자들의 부흥기를 다시 불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글쎄요, 아닐것 같습니다.



p.s. 프로그래밍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봤던 플랫폼이 리눅스였고, 리눅스 배포판은 넘쳐났다. 지금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대신 광대한 리눅스 배포판 계보도를 첨부파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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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zrak